누군가를 사랑할 때, 또는 정말로 헤어져야 할 때. 90년대 발라드는 그냥 배경음악이 아니었어요. 그 시절 발라드는 마음속 일기를 대신 읽어주고, 대신 울어주고, 끝까지 우리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한 편의 편지 같았습니다.
오늘은 90년대 감성 그대로 담긴 사랑·고백·이별 발라드 11곡을 골라봤습니다. 한 곡 한 곡마다 그 시절 공기의 온도, 거리의 조도, 라디오의 작은 잡음까지 떠오를 수 있도록 저만의 감상 한 줄, “샤랄라의 한마디”도 함께 적어둘게요. 그리고 각 곡은 바로 들을 수 있도록 유튜브 링크도 걸어둘 거예요. (공식/라이브/아카이브 영상 등으로 감상해 주세요.)
1. 사랑과 우정사이 - 피노키오
“사랑일까, 우정일까”라는 질문은 사실 ‘내가 잃을 게 뭘까’를 묻는 말이죠.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는, 친구 관계로 묶여 있던 마음이 갑자기 사랑 쪽으로 쏠릴 때 얼마나 두려워지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들려줍니다. 그 단어 하나만 잘못 꺼내도 지금까지 쌓은 모든 안전함이 깨질 것 같은 그 순간. 이 노래는 그 불안과 떨림을 그대로 두고, “나는 널 사랑하고 있었어”라고 고백해버립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이 노래는 고백하는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사실은 망설이는 사람의 노래예요.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진짜예요.”
2. 한 사람을 위한 마음 - 이오공감
이 곡은 제목 그대로예요. “많은 사람 중에 딱 한 사람”에게만 건네는, 편지처럼 조용한 고백. 화려한 표현보다 진짜 마음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내어주는 방식이라서 들을수록 ‘아 저 사람 정말 진심이구나…’ 하는 신뢰가 쌓입니다. 그리고 이 정직함은 요즘 말로 하면 ‘단단함’이에요. 흔들리지 않는 확신.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감각을 노래합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요즘은 사랑을 증명하려고 사진을 올리지만, 90년대엔 이렇게 노래를 들려줬어요. 세상 조용한 자랑.”
3. 너에게 -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는 지금 들어도 ‘청춘’이라는 단어 밖에 안 떠오르는 노래예요. 좋아하는 마음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이 마치 비밀 일기처럼 쏟아집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직 서툴고 불안정할 때, 이 곡은 묘하게 “괜찮아, 그냥 네 감정이야” 하고 허락해 줍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첫사랑은 완벽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서툴러서 기억에 남는 거라는 걸 알려주는 노래.”
4. 기억의 습작 - 전람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추억을 다시 꺼내 써 내려가는 과정’을 노래처럼 만든 곡입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그때의 냄새와 계절, 온도, 창가에 앉아있던 자세까지 같이 따라오잖아요. 이 노래는 그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적어 내려가요. 그래서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겨울 저녁, 어느 강의실 창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사실 우리는 사람을 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디테일들을 서랍에 넣어두는 거죠. 이 노래는 그 서랍을 조용히 여는 손 같아요.”
5.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 이원진
제목부터가 너무 솔직하죠. “시작되는 연인들.” 새로 시작하는 연애는 언제나 반짝이지만 사실 그 반짝임 뒤엔 엄청난 걱정이 숨어 있어요. ‘이 사람은 나한테 상처 줄까?’, ‘나는 이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 이 노래는 그 걱정을 부드럽게 덮으면서, 그래도 사랑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예쁜지 알려줍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사랑은 약속이 아니라 의지라는 걸, 되게 따뜻하게 말해주는 노래. ‘우리 잘해보자’ 그 한마디의 멜로디 버전.”
6. 또 다른 시작 - 서지원
서지원의 목소리는 어쩌면 90년대 감성의 상징 같은 톤이에요. <또 다른 시작>은 제목은 희망인데, 듣고 있으면 마음 어딘가가 시려옵니다. 왜냐면 “또 다른 시작”은 결국 “이미 한 번 끝났던 마음 위”에서만 가능한 거거든요. 상처를 안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의 불안, 그 떨림까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이 노래가 그때의 나에게 해줬던 말은 ‘괜찮아’가 아니었어요. ‘힘들지?’였어요. 그래서 더 위로였죠.”
7. 아름다운 이별 - 김건모
이별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사실 굉장히 잔인한 일일 수도 있어요. 근데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은 억지 미화가 아니에요. “우린 여기까지였지만, 그래도 너는 내 인생에서 소중했다”라는 마지막 인사에 더 가깝습니다. 울면서도 “고마웠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사람의 목소리.
샤랄라의 한마디: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회복 중이라는 뜻이에요. 상처 한가운데서는 못 들어요. 너무 아프거든요.”
8.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 신승훈
이건 정말 ‘자존심을 내려놓은 사랑 고백’에 가까운 노래죠. “너는 나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있을 뿐”이라는 가사는 열등감, 그리움, 인정,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애틋함이 한꺼번에 섞여 있습니다. 헤어진 뒤에도 상대를 낮추지 않고 여전히 예쁘게 기억하는 마음이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예요.
샤랄라의 한마디: “이 노래는 질투가 아니라 존중이에요. 사랑의 마지막 자세가 꼭 추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줘요.”
9. 여전히 아름다운지 - 토이
토이의 발라드는, 그냥 이별 노래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노래예요. <여전히 아름다운지>는 정말 잔인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넌 아직도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은 사실 “혹시 너는 잘 지내고 있니?”의 다른 말이죠.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안부를 묻는 가장 예쁜 방식. 이건 미련이라기보다는 예의에 가깝다고 저는 느껴요.
샤랄라의 한마디: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태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에서 무너집니다.”
10. 해줄 수 없는 일 - 박효신
박효신의 목소리는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위로’라기보다는 ‘그냥 같이 무너져주는 위로’에 더 가깝죠. <해줄 수 없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해주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현실적으로는 지켜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더 아프지만, 그래서 더 진실합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사랑은 결국 ‘지켜주겠다’보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자리까지 와요. 이 노래는 그 버티기 힘든 순간을 통째로 안아줘요.”
11. Day By Day - 애즈원
애즈원의 <Day By Day>는 이별 이후의 시간을 하루 단위로 잘라서 보여주는 곡이에요.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나을 거야”라는 식의 위로 대신, 그냥 “나는 오늘 이렇게 버텼어”라고 말해요.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위로가 됩니다. 이 곡은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이제 막 끝난 사랑을 뒤돌아보는 사람에게도 조용히 스며드는 노래예요.
샤랄라의 한마디: “잘 지내라는 말보다 ‘잘 버티고 있어?’라는 말이 더 필요한 날이 있죠. 이 노래는 그 질문을 아주 부드럽게 해줘요.”
샤랄라의 마무리
요즘 발라드는 사랑을 세련되게 말해요. “쿨하게 지내자”, “각자 행복하자” 같은 말들. 반면 90년대 발라드는 조금 더 솔직했죠.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아직도 그립다”, “미안하다”. 어쩌면 투박하지만, 그 투박함 덕분에 마음이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아요.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닿기를. 지금 이별 중이라면, 당신의 마음이 당신 자신에게도 조금은 안전해지기를.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 이 노래들이 아주 작은 숨 쉴 틈이 되었으면 합니다.
* 유튜브 링크는 공식/라이브/음원 유통 채널 등으로 검색 이동합니다. 각 아티스트와 제작자의 저작권을 존중하며 감상해 주세요.
글쓴이: 샤랄라
음악과 감정의 교차점에서 이야기하는 일상 음악 칼럼니스트
※ 본 포스팅은 공식 유튜브 음원 링크를 기준으로 감상 안내를 드리며, 영상이 삭제되었을 경우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영상 바로가기'를 통해 편하게 감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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