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발라드만의 서늘한 온도와 감성 플레이리스트의 밀도를 좋아한다면, 오늘의 선곡은 유난히 천천히 스며들 거예요. 샤랄라가 걷기 좋은 저녁을 떠올리며, 골목의 냄새와 바람의 질감까지 담아낸 열 곡을 골랐습니다. 오래 들을수록 더 깊어지는 멜로디, 가사를 오래 씹어볼수록 마음에 남는 문장들로 채웠어요.
1. 나얼 – 같은 시간 속의 너
호소력디테일 가창클래식 발라드
나얼의 보컬은 계절을 바꾸는 힘이 있어요. 곡은 시간의 층위를 촘촘히 쌓아 올리며, ‘같은 시간’이라는 문장 안에 서로 다른 온도를 담아냅니다. 현악의 잔향과 건반의 여백이 보컬의 굴곡을 선명하게 받치고, 후반부 애드리브는 미련과 체념 사이의 얇은 막을 터뜨리죠.
샤랄라의 한마디. 이 노래는 따뜻한 조명 아래 낡은 사진첩을 펼치는 순간과 닮았어요. 잊었다고 믿는 기억이 페이지 사이에서 가볍게 솟구칩니다.
2. 어반자카파 – 널 사랑하지 않아
이별 통보냉정한 서늘함대화체 가사
사랑의 끝은 종종 거짓보다 솔직함이 더 아프죠. 차분한 템포, 숨을 고르는 보컬, 절제된 악기 운용이 한 문장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읍니다.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직선의 언어는 잔혹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책임과 슬픔도 오롯이 들려요.
샤랄라의 한마디. 헤드폰으로 들으면, 마치 카페 구석 자리에서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대화를 끝내는 둘의 공기가 피부에 닿습니다.
3. 거미 –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레전드폭발적 클라이맥스호소 가창
발라드의 정수를 설명하라면 이 곡을 틀면 됩니다. 첫 구절의 떨림부터 브리지의 상승 구간, 그리고 고음이 터지는 순간까지 서사가 정교해요. ‘사랑’과 ‘친구’ 사이의 어긋남을 너무 늦게 깨달은 화자의 후회가, 거미 특유의 진동으로 파고듭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노을이 지는 강변을 걷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노래. 울컥, 하고 멈칫하는 그 한 박이 이 곡의 심장입니다.
4. 권진아 – 운이 좋았지
포근한 톤일상 서정위로
권진아의 목소리는 낮은 체온의 따뜻함을 닮았죠. ‘운이 좋았지’라는 겸손한 문장은 지나온 시간을 돌려보는 성찰의 말투입니다. 스트링의 미세한 떨림과 어쿠스틱 기타가 가벼운 파동처럼 겹쳐지며, 바쁜 하루 사이로 스며드는 숨구멍이 됩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따끈한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오늘의 실패마저 애정 어린 기억으로 감싸줄 때 듣기 좋은 곡.
5. 이소라 – 신청곡 (feat. SUGA of BTS)
명문장 가사담백한 고백콜라보
라디오에 노래를 청하는 형식의 서사,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죠. 이소라의 호흡과 침묵, 슈가의 랩이 맞물리며 감정의 입체감을 완성합니다. 심플한 편곡은 ‘말’의 질감을 살려 주고, 마지막 한 구절이 오래 맴돌아요.
샤랄라의 한마디. 누군가에게 직접 전화할 용기는 없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이 노래는 밤하늘을 통해 메시지를 띄워 보냅니다.
6. 백예린 – 너머
꿈결채도 낮은 무드몽환
‘너머’라는 단어는 경계를 전제합니다. 백예린은 보컬의 숨과 숨 사이에 빛이 스치듯 감정을 떨어뜨려요. 기타의 리버브가 공기를 넓히고, 미세한 신스가 풍경을 누빕니다. 직설 대신 이미지로 건네는 위로가, 가을 밤의 창문처럼 조용히 열립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오늘이 마음에 조금 무거웠다면, 이 노래를 틀고 방의 불을 반쯤만 켜 보세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마음의 경계도 부드러워집니다.
7. 심규선(Lucia) – 부디
문학적 이미지섬세한 서정여운
심규선의 노래는 한 편의 시집처럼 페이지마다 향기가 달라요. ‘부디’는 결이 고운 현과 기타가 직조되는 사이로 기도가 스며드는 곡. 사랑의 안녕을 바라면서도 손끝의 떨림을 숨기지 않죠. 낮은 볼륨으로 틀어도 가사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옵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편지 봉투를 봉할 때 마지막 남는 따뜻한 김, 그 순간의 온도를 가장 잘 닮은 노래.
8. 10cm – 서랍
담담한 고백어쿠스틱드라마틱 브리지
오래된 서랍을 열면 늘 같은 냄새가 나죠. 10cm의 담백한 보컬은 그 냄새를 배경 삼아 추억을 하나씩 꺼냅니다. 기타 스트로크의 결이 살아 있고, 후반부 스트링이 감정을 밀어 올립니다. 눈부시게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위로가 되죠.
샤랄라의 한마디. 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영수증 뒤편의 낙서처럼, 별것 아니어도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그런 조용한 떨림을 기억하게 해요.
9. 잔나비 – 가을밤에 든 생각
레트로 감성서정적 편곡산책 BGM
잔나비는 계절의 질감을 음악으로 빚어내는 팀입니다. 이 곡은 제목부터 가을의 냄새가 나요. 브라스와 스트링, 코러스가 섬세하게 쌓이며 노란 가로등 아래의 길을 한 장의 영화 장면으로 바꿉니다. 멜로디가 길게 호흡하며, 걷는 속도도 자연히 느려집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혼자 걷는 길에 친구가 같이 걷는 것 같은 기분. 말이 없어도 서로가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받는 밤입니다.
10. 장범준 – 당신과는 천천히
산책 발걸음멜로우 기타일상 로맨스
제목처럼 ‘천천히’가 주제인 곡. 기타의 따뜻한 톤과 소박한 가사가 일상적 행복의 속도를 회복시킵니다. 장범준 특유의 구어체 멜로디 라인은 공기를 가볍게 띄우고, 후렴의 반복은 삶을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보게 해요. 서둘지 않아도 좋다는 말, 가을 끝자락에 가장 필요한 문장입니다.
샤랄라의 한마디. 손을 꼭 잡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걷는 사이, 그 자연스러움에 마음이 먼저 웃습니다.
걷는 음악으로 완성하는 가을 루틴
가을의 저녁은 금방 어두워지고, 마음은 사소한 장면에 쉽게 젖습니다. 오늘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마음의 속도를 배려해 구성했어요. 초반엔 기억을 꺼내고, 중반부엔 위로와 성찰을 지나, 끝으로는 일상으로 안착합니다. 이 순서를 따라 들으면 감정의 고저가 안정적으로 이어져 하루의 마침표가 고르게 찍힙니다.
- 집중해서 듣기: 이어폰보다 헤드폰, 작은 볼륨으로 시작해 후반부에 살짝 올리세요.
- 걷기 루틴: 30~40분 코스로 가볍게 걸으며 들으면 호흡 리듬이 멜로디와 맞물립니다.
- 기록 남기기: 곡마다 떠오른 문장을 핸드폰 메모에 적어두면, 나중에 읽을 때 또 다른 노래가 됩니다.
샤랄라의 큐레이션 기준
이번 선곡은 ‘가을에만 더욱 빛나는 문장’과 ‘걸음과 호흡의 리듬’을 기준으로 고른 리스트입니다. 과도한 고음이나 감정 과잉보다는, 잔향과 여백이 많은 곡을 우선했어요. 또한 한 번 들었을 때는 부드럽지만, 두 번 세 번 들을수록 서사가 확장되는 곡을 중심으로 배치했습니다.
마무리
가을은 우리에게 ‘천천히’를 권하는 계절입니다. 오늘의 가을 발라드 10곡이 당신의 저녁을 조금 더 다정하게 감싸주길 바랍니다. 다음 산책도 음악과 함께 걸어요. 샤랄라는 늘 골목 어귀에서 새로운 멜로디를 챙겨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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